한국 청춘 73% “한국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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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흔들리는 2030 세대

한국을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 하는 청춘들의 모습. 그들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얼굴 위에 합성한 가면은 각자가 떠나고 싶어 하거나 살고 있는 나라의 국기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캥거루 회계사, 독일 공대녀, 평생 사장, 마냥 무계획씨.


 

세월호 사태가 가장 큰 계기
죽어라 일해도 집 한채 못사

한국은 나와 다른 것에 공격
마음 여유 있는 외국 부러워

한국의 청춘들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사랑할 만한 곳인가. 특히 요즘 청춘세대 가운데 그런 의심을 나타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취업도 결혼도 주택 마련도 힘든 한국 땅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72.7%에 이른다. 최근에 나온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에서의 삶에 지쳐 결국 호주로 떠나 버린 주인공 계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취재팀은 현실 속 계나’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소설의 주요 대목과 함께 한국을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 하는 청춘 5명의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한국이 싫어졌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모국이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한국이 싫어서’, 10쪽)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44쪽)

여기,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처럼 한국을 이미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 하는 5명의 청춘이 있다. 그 면면을 별명으로 소개한다.

①캥거루 회계사: 29세 남자. 취업 면접에 줄줄이 낙방. 한국에선 취직이 왜 이리 힘들까.

②독일 공대녀: 28세 여자. 지난해 초 한국을 떠나 독일에 정착.

③워킹걸: 26세 여자. 호주로 1년간 워킹홀리데이.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언젠간 영영 떠날 테다.

④평생 사장: 27세 남자. 호주에서 서빙과 청소 일을 했다. 평생 서빙을 할 순 없어 일단 한국에 돌아오긴했지만.

⑤마냥 무계획: 23세 여자. 미국 룸메이트의 자유로운 생활을 보면서 외국 생활을 동경했다.

캥거루 회계사는 소설 속 계나처럼 한국을 떠나 3개월 전 호주로 갔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대학원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며 소설 속 계나의 궤적을 그대로 밟고 있다. 그는 “세월호 사태가 한국을 떠난 결정적인 계기”라고 했다.

“이 나라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날 돌아보지 않겠구나 싶었어요. 피해를 당할 때 ‘을’의 위치에 있다면 끝이라는 느낌이 들었죠.”

“아버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평생을 다 바쳐서 남는 건 집한 채와 자식인데 자식마저 보내고 나면 남은 아버지의 인생은 뭐가 되겠느냐”고 했다.

이번엔 독일 공대녀(28.여)의 사연을 들어보자. 그는 1년간의 캐나다 어학연수 이후 한국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지난해 초 독일로 떠나 정보통신(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다.

“한국 사회는 자신과 다르거나 약자일 경우 굉장히 공격적으로 대하잖아요. 세월호 사태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리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추모하는 분위기를 따르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그런 분위기. 한국의 집단적인 문화가 답답했어요.한국에서는 ‘여자는 여자라서 남자는 남자라서’라는 얘기를 쉽게 합니다. 배려가 없고 다양성에 무심한 분위기를 견딜수 없었어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1년에 3만 달러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152쪽)

워킹걸(26.여)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대학생이다. 그 역시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때 경험했던 일이 잊히질 않는다고 했다.

“호주엔 공원이 많은데 낮 시간에도 아빠들이 정장을 입고 나와서 아기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단 한 번도 아이를 낳고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애들을 두셋 낳아도 좋을 것 같았어요.”

마냥 무계획(23.여)도 여유 있고 배려 깊은 미국인 룸메이트를 만나고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됐다. 그는 “한국과는 달리 경쟁이 덜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유토피아는 없더라

“당시에 나는 다른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셰어 하우스에서 살았는데, 거긴 정말 최악이었어.(…) 거실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어왔고, 누군가 불쑥 천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올 것 같은 두려움에 늘 시달렸어.”(88쪽)

막상 한국을 떠나본 이들은 다른 이야기를 할 때도 많다. 타국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거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과 언어 문제 등이 일상을 괴롭혀 끝내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도 호주 생활에 시달리다 한국으로 잠시 돌아왔다.

평생 사장도 호주에서 1년간 머물다가 일단 한국으로 돌아온 경우다. 호주 리조트에서 일하며 생활했지만 다시 한국행을 택했다.

“유토피아 같을 줄 알았던 호주 생활도 일상이 되니 힘들었어요. 평생 서빙 같은 일이나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죠.”

‘한국이 싫어서’ 주인공 계나는 호주로 떠났다가 남자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생활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호주로 다시 날아갔다.

지난해 말 한국에 돌아온 평생 사장도 계나처럼 다시 호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일만 강요하는 한국의 문화가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죽어라 일만 해도 집 한 채 사기 힘들고 결혼도 쉽지 않은 한국에서 어떻게 평생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언젠가는 영원히 이 나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 평생 사장은 정말 한국을 영영 떠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한국이 싫다는 청춘들 청춘들, 당신들은 과연 그럴 용기가 있는가.

채승기 기자·배지원 인턴기자

 

[LA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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