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인권운동가 박연미 시애틀 강연 큰 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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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인권운동가인 여대생 박연미(22)씨가 지난 16일 시애틀에서 유린당하고 있는 북한 인권문제와 탈북자들에 대해 한인들과 미국인들이 큰 관심을 가져줄 것을 적극 호소했다.
UW 동아
시아 도서관과 워싱턴대학교 학생 단체인 북한인권동아리 (THINK: The Human rights In North Korea, 명화연 회장)가 공동으로 주최해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UW Gowen 301 호실에서 열린 행사에는 정원보다 훨씬 많은 300여명이 참석해 일부는 돌아가야 할 정도로 큰 성황을 이루었다.

유창한 영어로 국제적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규탄하고 있는 미모의 탈북 여대생으로 유명한 그녀는 2007년 탈북 해 동국대학교에 다니다 이번에 콜럼비아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이날 박연미씨는 2015년에 발간한 자서전 ‘In Order to Live: a North Korean’s Journey to Freedom‘ (한국어 판: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 를 주제로 자신이 겪은 북한의 처참한 실상과 인권 유린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말로 말했으며 이어 영어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녀의 간증에 따르면 그녀는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났으며 부모와 언니 한명의 평범한 가정이었는데 8살 때인 2002년 당원인 아버지가 김정일 사망 후 배급이 중단되자 암시장에서 불법장사를 하다가 수감되었다.

어머니도 조사를 받아 언니와 그녀만 집에 남게 되자 압록강 인근 산에서 풀 캐어 먹고 살았다. 아버지는 3년 후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배고파 16살 언니가 중국으로 먼저 떠났다. 언니가 어디 갔는지 몰랐는데 중국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13살 때 어머니와 함께 중국 브로커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탈북 했다. 중국으로 가면 밝은 세상이 오고 고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또다른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첫날 중국 브로커가 어머니를 강간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싫으면 북한으로 돌아가라는 협박으로 어머니는 260불, 자신은 300불 넘게 팔려나갔다.

중국에 온 아버지가 14살 때 돌아가시자 새벽 3시에 땅에 묻었다. 15살 때인 2009년 2월 어머니와 몽골로 갔다. 나침반, 면도칼, 독약을 가지고 죽을 준비하고 고비사막 넘었다. 2009년 4월 인천으로 들어왔다. 자유를 얻고 지옥을 벗어났는데 또 다른 지옥이었다.

북한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나 남한은 선택 자유가 있는 대신에 책임감이 있었다. 피나는 노력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등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다. 탈북자 편견이 있어 수치스러워 신분을 숨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아일런드 더블린에서 ‘2014 젊은 지도자 회의’ 연설 기회에서 정의가 살아있는 것을 알고 이젠 탈북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박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닫혀 있는 나라,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통행증이 없으면 이웃동네도 갈수 없을 정도로 자유가 없는 나라였으나 가장 잘 사는 나라일 정도로 세뇌 교육을 당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불평도 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독재 정권만 없으면 정든 고향과 사람들이 있어 항상 가고 싶고 가슴에 남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이 자리에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북한 인권과 중국 탈북자 문제에 언론과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미디어들은 지난번 북한 수소폭탄과 김정은을 우스꽝스럽게 만든 영화에나 관심을 가졌으나 이제는 사실 이슈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국은 수만명의 탈북자들을 불법으로 북한에 돌려보내고 있고10-13세 어린이들이 200-300불에 팔려간다”며 자신도 “너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너를 죽여도 아무도 신고할 사람이 없다”고 협박을 당했다고 눈물지었다. 박씨는 중국에서 탈북자들은 죽어도 말할 사람이 없다며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에 있었을 때는 빵이 가득한 바케스 하나를 얻는 것이 꿈이었는데 중국에서는 이 꿈이 이뤄졌지만 행복하지 않았다”며 인간의 존엄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남북한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강연후 박연미(오른쪽)씨가 한 참석자와 함께 셀피를 찍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 관심 뜻 깊은 행사”
설립 1년만에 성공적 행사 치룬
UW 학생단체 ‘북한인권동아리’

시애틀에서 첫 연설한 박연미씨는 아일런드 수도 더블린에서 열린 ‘2014 젊은 지도자 회의’에서 연설 후 유명해 졌다. 당시 190여 개국 18~30세 젊은이 1300여 명이 참석했고 30명의 연사가 의견을 발표했는데 탈북 여대생 박연미씨 가 눈물을 흘리며 북한 인권 참상을 알렸다.

특히 중국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대신해 탈북을 돕는 브로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눈물 섞인 증언으로 충격을 주었다. 이 회의를 시작으로 ‘국제 인권회의’, ‘제6차 세계여성정상회의’ 등에 참석하며 북한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TV에 출연하고 워싱턴포스트에 ‘북한 암시장 세대의 희망’이라는 글을 기고하는 등 세계를 무대로 북한 인권 관련 증언과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정책 중단 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영국 BBC방송이 선정한 ‘올해의 세계 100대 여성’에 선정된 바 있다.

이처럼 박씨의 영향력이 커지자 북한 측에서는 대남선전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박씨의 친인척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출연시켜 ‘인권 모략극의 꼭두각시 박연미’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리며 박씨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보도할 정도였다.

북한의 압력에도 지난해 책을 발간한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북한의 참상,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 탈북자의 비참한 삶을 그렸다.

미국에서는 시애틀이 처음 하는 한국말 강연이라는 그녀는 중국 암시장의 DVD를 통해 한국 드라마와 외국 영화도 보았는데 타이타닉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이성간의 사랑으로 죽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주체사상의 북한은 사랑이나 영화, 노래 모두가 정권을 위해 있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 행사를 UW 동아시아 도서관과 함께 공동 주최한 워싱턴대학교 학생 단체인 북한인권동아리 (THINK) 설립자이자 현 회장인 명화연씨는“지난해 처음으로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찾아가 THINK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벌써 이렇게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또 연사 섭외 및 홍보 등 많은 역할을 THINK가 맡아서 준비했다며 학생, 미국인, 동포들이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뜻 깊은 행사였다고 강조했다.

특히 THINK는 이날 최근 미국 하원에서 통과된 북한제재 법안인 H.R. 757에 대해 설명하고 참가자들에게 이 법안이 상원에서도 통과될 수 있도록 서명 운동을 전개했다. 또 추첨을 통해 참가자들 중 다섯 명을 뽑아 박연미씨의 서명이 담긴 책을 선물하는 시간도 준비했다.(THINK 명화연 회장(왼쪽)이 박연미씨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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