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규 특파원 네팔 지진 현장을 가다] 30분이 생사 갈랐다 … 점심 먹다 일정 늦어져 구사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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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메트로 산악회원·가족 14명
간발의 차이로 지진 피해 대피
“아랫길 바위 쏟아지고 도로 갈라져”
지진 멈춘 뒤 절벽 타며 25㎞ 하산

“30분간의 점심이 생사를 갈랐다.”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 지진을 만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탈출에 성공한 서울메트로 산악회원과 가족 등 한국인 14명 얘기다. 이들이 히말라야 랑탕 지역으로 떠난 건 지난 16일. 9일 동안의 등반을 마치고 25일 오전 10시30분 둔체라는 로지(산장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내친김에 버스를 타고 하산해 카트만두에서 휴식을 취하자는 일행도 있었지만 여성 일행 6명이 좋아하는 양식을 같이 맛보자는 의견이 있어 점심을 하기로 했다. 점심을 시작한 건 11시30분. 그리고 12시쯤 일행이 버스에 올랐는데 갑자기 버스가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을 아래 도로에는 집보다 큰 바위가 쏟아졌고 도로 아스팔트도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누군가 “빨리 내려”라고 외쳤다. 혼비백산한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산 위로 뛰기 시작했다.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마을 정상엔 운동장 같은 평지가 있어 지진 대피를 위한 최적지였다. 곧바로 텐트를 치고 히말라야 난민 생활이 시작됐다. 버스가 다니는 산 아래 트리리스 마을까지는 70㎞. 그러나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된 데다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누구도 길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구호양식으로 지급되는 콩과 옥수수를 먹고 마을 가게에서 네팔 라면과 달밥(네팔식 백반)을 구입해 끼니를 해결했다. 네팔 주재 한국대사관에 수차례 전화해 구조를 요청했지만 “곧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만 왔다. 대사관의 외교관 4명이 다른 한국인 피해 상황을 파악하느라 이들까지 챙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거였다. 결국, 이들은 28일 새벽 4시40분 하산을 시작했다. 유실된 도로를 우회하고 절벽에선 서로 붙잡으며 25㎞를 내려오니 덤프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그곳부터 도로는 통행이 가능했다. 트럭을 타고 45㎞를 달려 트리리스에 도착해 카트만두 한국인산악회(회장 이구) 측이 제공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날 밤 카트만두에 안착했다. 14시간30분의 탈출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경남 창원 태봉고 학생 44명과 인솔교사 4명 등 한국인 48명도 25일 카트만두 부근의 국제학교에서 재능 나눔 등 자원봉사를 하다 지진을 만났으나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카트만두 한국인산악회 측은 29일 “지진 전 히말라야 트레킹을 간 한국인은 줄잡아 1000여 명에 이르는데 이 중 100~200명 정도가 하산에 성공했고 나머지는 로지에 대피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매년 히말라야를 트레킹하는 한국인은 2만여 명. 이들은 주로 봄과 가을에 트레킹을 한다.

정부는 네팔에 머물고 있는 한국민의 조기 귀국을 지원하기 위해 국적기를 증편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260여 명이 탑승 가능한 보잉777 기종 국적기가 30일 오전 9시15분(현지시간) 카트만두에 도착해 여행객을 태운 뒤 10시15분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해당 항공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대한항공 콜센터(1588-2001)나 대한항공 카트만두 지점(977-1411-3012)으로 연락하면 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항공기 증편으로 상당수 한국 국민이 조기 귀국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지난 27일 떠난 탐색구조대 10명 외에 다음달 1일 32명을 파견하고 이후 의료팀(12명)도 추가 파견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또 텐트 등 현물로 50만 달러(약 5억3400만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네팔 카트만두 인근 박타푸르에서 활동 중인 한국의 119 국제구조대는 29일 반파된 4층 건물을 수색해 두 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카트만두=최형규 특파원

서울=안효성 기자

chkc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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