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0주년 특별 기획-미주한인 40대 보고서]요즘 40대 남자들은 ‘출구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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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여기저기 떼고 나면 월급은 반토막

아이들의 ‘소원’못들어줘 가슴 시려

아직 집 장만 커녕 건강검진도 못해

“어휴~한국서 아버지 모습과 같네”

40대는 사회의 허리다. 부모를 모시는 자식이자 가장이고, 관리자이고 운영자이다. 모든 면에서 중심이지만, 오히려 그 무게 때문에 어느 하나 제대로 껴안지 못한다. 본지는 창간 40주년을 맞아 미주 한인 40대들의 허리에 힘을 실어주고자 특별 기획 기사를 싣는다. ‘미주한인 40대 보고서’다.

머리글은 K씨의 하루다. 설문조사로 분석한 40대 한인들의 중간값과 평균치로 만든 가상 인물이다.

아파트 현관 앞이다.

아침 7시 반. 두 아이를 등교시켜야 한다. 아이들은 차 뒷좌석에 올라타자마다 ‘소원’들을 찔러댄다.

“아빠 아빠, 나 스마트폰 사줘.” 중학교 다니는 큰 놈은 ‘친구들 다 가지고 있다’는 말로 필요성을 정당화했다. 초등학생 막내 딸은 한 술 더 떴다. “아빠는 언제 사장님 돼?” ‘친구 아빠=사장님=친구는 사고 싶은 옷 다 산다’는 단순한 공식이지만 내겐 아픈 현실이다.

신호등에 멈춰선 사이, 일주일 용돈을 얼마나 아껴야 하나 잠깐 계산해보다가 관뒀다. 아낀다고 해결될 계산법이라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난 연봉 6만3000달러 받는 전문직 부장이다. 한국 친구들은 내 월급이 많다고 부러워한다. 모르는 소리다. 세금 떼고 나면 매달 5000달러도 못 쥔다. 아직 집 장만을 못해 아파트에 산다. 2000달러 렌트비와 차 2대 페이먼트, 보험료만 내도 월급 절반 이상이 축난다. 맞벌이를 하려고 해도, 아이들 애프터스쿨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아내가 집에서 쉬는게 낫다.

출근했다. 부하직원의 실수 하나가 한달간의 프로젝트를 날렸다. 입만 빠른 상사는 “그래서 출세하겠어?”라며 온전히 내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일하다 점심 때를 놓쳤다. 4.99달러 설렁탕으로 소나기 점심을 먹고 들어왔다.

또 소화가 안된다. 아이들 응급실 때문에 병원 문턱이 닳도록 뛰어다녔지만, 정작 나는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없다.

이짓을 왜 하고 있나 서글퍼졌다. 마침 동창의 문자가 왔다. ‘소주 한잔 어때?’ 녀석은 잘 나가는 변호사다. 이번엔 내가 살 차례다. 저녁 술자리와 아들 녀석 스마트폰이 저울 위에 올려졌다. 문자를 찍었다. ‘친구야 미안하다. 집에 일이 있다.’ 스트레스는 혼자 삼키면 된다. 운동이나 취미생활도 다 돈이고, 사치다.

퇴근길 차안에서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25년전 대학입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가족 이민을 결심하셨다. 자식 좋은 교육시켜 아메리칸 드림 이루겠다는 일념에서다. 그 덕에 UC계 대학을 나와 큰 탈 없이 직장도 구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 삶은 한국에서 아버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방향이 잘못됐나 싶어 이직이나 창업을 고민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마흔 넷에 날 받아줄 직장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을 뿐더러, 창업 밑천도 없다. 아이들 공부 시키느라 노후대책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역이민을 잠깐 생각했지만 갈수 없다. 부모님과 형제, 가족이 있는 LA가 내 집이고 고향인데 어딜 간단 말인가.

아버지가 말씀하신 아메리칸 드림은 있는 걸까. 현실속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서건 ‘내 꿈’은 없다. 내 나이 마흔 넷, 난 어디로 가고 있을까. 집이 저만큼 보였다. 다시 아파트 현관문 앞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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