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가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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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차가운 비가 내린다. 차가운 비가 어제 그제 얼굴과 몸에 떨어졌다. 벌써 시애틀에 가을이 왔나 아쉬운 생각이 절로 든다.

요즘 자주 들리는 빗소리뿐만 아니라 출근길이 더 어두워지고 더 서늘해져 벌써 집안에 난방을 해야 했다. 특히 동네 나무 잎들은 어느새 노란색과 붉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 거의 3개월 이상 비가 오지 않고 가장 많은 90도 무더위 날 신기록 이라고 떠들썩했는데 9월이 오니 갑작스레 달라진 기후를 보며 계절은 우리들을 속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제법 많이 내리는 비들로 인해 여름 내내 매일 채소밭과 꽃밭에 물을 주던 아내의 노고가 덜해지고 물 값도 덜해져 좋지만 차가운 날씨와 흐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의 시애틀 가을에 이제 또  춥고 비 많이 오고 눈까지 오는 긴 겨울을 어떻게 견디어야 할까 하는 우려도 든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그 비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그동안 지속되었던 가뭄들이 해갈되면 좋겠다.

시애틀에 내리는 그 많은 비는 숲을 푸르게 하고 공기를 맑게 하고 아름다운 강에 연어들이 올라오게 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제일 살기좋은 시애틀에 있는 우리는 비를 반겨야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시애틀은 연 34인치의 비가 내리는데 연 평균 120인치나 되는 많은 비가 내린다면 시애틀 사람들은 못산다고 도망갈 것이다. 이처럼 많은 비가 내려서 더 유명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도 있다.

워싱턴주 올림픽 반도 안에 있는 작은 타운 폭스(Forks). 인구 불과 3000명에 연 120인치나 되는 많은 비가 오고 볼 것도 없는 곳이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이유는 이곳이 흡혈귀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유명한 소설과 영화 ‘트와일라잇'(Twilight)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 소설은 2005년 스테파니 마이어가 뱀파이어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여 4권이 출간되었는데 책이 큰 인기를 끌고 미국과 한국에서도 영화로 개봉되자 이 스토리에 열광한  팬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작가는 이곳을 가본적도 없지만 단지 비가 많이 와서 인근 레인 포리스트에 뱀파이어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 폭스를 택했다고 한다.

환절기에 가을비를 맞아선지 벌써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보니 추워질 겨울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우리집 뒤 텃밭에 심었던 호박 줄기가 여름철엔 아름다웠던 꽃이 떨어지면서 이제야 호박 열매가 이곳저곳에서 큼직하게 맺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지난 여름철에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었던 열매들이 이 가을철에 많이 맺힐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간 여름철에 아름답게 피었던 꽃들이 떨어졌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여름철 꽃들에 몰려들었던 벌, 나비가 오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자.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 꽃 안에서 벌 나비들이 꽃가루를 부지런히 옮겼기 때문에 이제 가을철에는  비록 그 꽃이 떨어지고 벌,나비가 보이지 않아도 풍성한 열매를 맺힐 것을 기대하고 소망과 용기를 갖자.

앞으로 비오고 어두운 가을철 우울한 시간이 올 때면 여름철에 사라진 것만 생각하며 한숨 쉬지 말고 풍요로운 가을의 결실을 바라보자.

시애틀에 이제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면 머지않아 시애틀 인근 과수원의 사과는 더 빨갛게 익고 막 따온 옥수수들은 더욱 산더미처럼 쌓일 것이다. 또 할로윈을 앞두고 넓은 평원에서는 여러 종류의 누렇게 익은 수많은 호박들도 수확할 것이다.

우리가 지난봄에 뿌리고 여름 내내 가꿨던 것들을 수확할 수 있는 결실의 계절을 맞아 우리들의 가정과 사업, 직장에서도 더 많은 기쁨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지길 바란다. (이동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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