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돈’이 작용하는 교계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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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지난주 한인교계의 예배당 임대 현실을 보도했다.

교회 간 경쟁은 옛말이다. 지금은 교회끼리 공간을 나누거나 빌려서 사용한다. 물론 상생을 위한 공유는 아니다. 생존을 위한 상생이다. 자본주의 속 교회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면에 담고자 했다. 이면에는 ‘돈’이 작용하는 현실이 존재해서다.

사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처지는 비슷하다. 대형교회의 1년 예산은 보통 수백, 수천만 달러다. 예산 편성은 건물 대출금 상환, 시설 관리 비용, 목사 및 직원 인건비 등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즉, 몸집 유지를 위한 지출이 대부분이다.

작은 교회는 ‘유지비용’이 ‘생존비용’으로 바뀔 뿐이다. 큰 교회에 비해 단위만 적을 뿐, 렌트비, 기본 운영비, 약간의 목사 사례비가 전부다. 교회가 돈을 부리는 것인지, 돈이 교회를 운영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게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기독교다.

교계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다. ‘내 집 마련’이나, ‘교회 건물 마련’을 위한 간절함은 같다. 비즈니스를 차릴 때 누가 망할 생각 먼저 하겠는가. 개척교회 목사가 갖는 희망도 비슷하다. 미국이 ‘페이먼트 인생’이라면,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계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먹이사슬 세계다. 소유와 스펙이 암묵적으로 등급을 나누는 사회처럼, 교계도 교인수와 교회 크기를 통해 능력이 측정된다.

취재를 해보니 건축에 힘을 쏟는 교회, 청빙시 목회자의 상향이동, 성장론 또는 방법론에 치중하는 목사 등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교회도, 목사도 막상 ‘자본’이란 현실을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 보니 교인도 ‘소비자’가 됐다. 교인들도 골목교회가 대형교회에 의해 잠식되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고, 작은 교회들이 건강해져야 함을 인식한다.

하지만 소비자로서의 실제 선택은 다르다. 내면의 종교적 소비 심리는 어쩔 수 없이 더 나은 서비스와 교회 환경의 이점 등을 찾게 한다.

취재 가운데 여기저기 전전하는 미자립 교회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접했다. 사례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일과 목회를 힘겹게 병행하는 목사도 만났다. 그들의 삶 이면에는 말 못할 설움, 애환이 존재한다. 위로도 필요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생존을 두고 ‘어떻게(how)’를 고민한다. 그러나 ‘왜(why)’를 생각하는 교회는 드물다. 방법에 대한 고뇌는 시각을 환경에 국한시켜도, ‘교회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기독교의 정체성과 의미, 역할 등을 붙들게 한다. 이는 교회의 본질을 일깨운다.

존재적 이유와 가치의 고찰은 중요하다. 생존 방식은 시대마다 변해도, 존재의 가치는 불변해서다. 교회는 역사를 거치며 늘 그렇게 존립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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