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20달러 돼도 감산 없다” … 무자비한 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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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알나이미 석유장관의 승부수
80년대 북해 유전 개발 때
감산 전략으로 맞서다 낭패
이번엔 시장점유율 지키기
유가 요동, 하루 새 3% 폭락

 

알리 빈 이브라힘 알나이미(79)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12세 때 세계 최대 석유 회사 중 하나인 아람코(Aramco)에 사환으로 입사했다. 열심히 일하며 학업도 병행했다. 그는 미 리하이대에서 지질학 학사학위를,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에는 비왕족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의 석유자원부 장관이 됐다. 이 입지전적 인물은 승부의 세계에서는 ‘냉혈한’이다. 사우디의 이익을 위해서는 동맹국도 적도 구별하지 않는다. 그가 지금 사우디의 무자비한 치킨게임을 이끌며 세계 원유시장에 큰 파장을 던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알나이미 장관은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져도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원유 생산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그는 사우디 국영 알하야트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신규 수요가 발생하면 산유량을 오히려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전체 회의에서 ‘감산은 없다’는 합의를 이끌어낼 때도 그는 단호했다. 현재는 저승사자의 기세가 더 강해졌다. 그는 지금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은 즉각 요동쳤다. 22일 서부텍사스유(WTI) 내년 2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 전자거래에서 전 거래일보다 3.3% 떨어진 배럴당 55.26달러에 체결됐다.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도 2.11% 내렸다. 6개월 만에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알나이미 장관의 발언은 사우디가 가격보다는 시장점유율 확보로 원유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올 9월까지 사우디의 일일 평균 원유 생산량은 975만 배럴이다. OPEC 일일 총생산량(3000만 배럴)의 3분의 1에 해당된다.

사우디가 시장 지키기에 나선 것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80년대 북해 유전이 발견된 뒤 유가가 급락하자 감산으로 가격을 지지했다. 하지만 가격 하락을 막지 못했고 재정 적자만 쌓였다. 적자에서 회복하는 데만 16년이 걸렸다. 사우디의 도발에 시장에서는 “사우디가 고비용의 원유 생산업체를 향해 결투를 신청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국 셰일오일과 캐나다의 오일샌드, 브라질의 심해 원유 등 OPEC을 위협했던 적을 제압하기 위해 작심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알나이미 장관은 “사우디가 감산에 나서면 유가는 회복되겠지만 러시아와 브라질, 미국의 셰일오일 업계 등이 사우디 등의 시장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뉴욕 에너지 헤지펀드인 어게인캐피털의 파트너인 존 길더프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시장 약자들을 끝장내려는 총력전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사우디도 원유 가격이 배럴당 90달러 이하면 재정 수입이 줄어 나라 살림이 적자가 된다. 그래도 사우디가 이런 무자비한 게임을 벌이는 것은 풍부한 외환보유액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750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외환보유액 덕분에 사우디는 저유가에도 최소 2년은 너끈히 견딜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유가가 떨어지며 원유 수입국과 수출국의 손익 계산은 달라지고 있다. 산유국인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는 디폴트(지급불능) 위기에 직면했다. 반면 원유 수입국에는 유가 하락이 일단 ‘영양제 주사’가 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내년도 세계 경제성장률이 최대 0.7%포인트 더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0.2~0.5%포인트, 중국은 0.4~0.7%포인트 더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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