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차별이 원인” vs “흑인들은 뭐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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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대 교수, ‘볼티모어 폭동’ 흑인사회 책임론 주장 논란

경찰에 체포된 흑인 청년의 사망사건이 발단이 된 ‘볼티모어 폭동’은 미국사회에 많은 논란을 남겼다. 지난 달 28일 벌어진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경찰의 공권력 남용 중단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AP]

“차별 극복위해 어떤 노력했나
아시안처럼 동화 의지 필요하다”

“역사적 배경 무시한 억지 논리
뿌리 깊은 냉대 빈곤과 고립 불러”

미국에서 인종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워낙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국가이다 보니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문제다. 지난달 발생한 ‘볼티모어 폭동 사태’의 원인을 두고 최근 불거진 설전도 미국사회의 이런 단면을 보여준다. ‘듀크대 제리 휴 교수(사진)의 인터넷 글 논란’이 그것이다.

발단은 휴 교수(정치학과)가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서다. 휴 교수는 9일자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인종차별이 어떻게 볼티모어에 불행을 가져왔나(How Racism Doomed Baltimore)’라는 제목의 사설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사설은 볼티모어 폭동 사태의 근본 원인이 ‘흑인들에 대한 오랜 차별 때문’이라고 지적한 내용. 차별이 흑인사회에 빈곤(poverty)과 고립(isolation)을 가져왔고 폭동 사태도 이런 배경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휴 교수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흑인사회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인종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아시안을 흑인과 대비시켰다.

아시안들은 미국사회에 통합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데 반해 흑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글이 올라오자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반적인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주장인데다 그가 유명 정치학 교수라는 점도 작용한 듯 하다. 인터넷에는 수 백개의 댓글이 달렸고 ‘어떻게 유명대학의 교수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느냐’며 이를 비판하는 칼럼도 잇따랐다.

하지만 휴 교수는 허핑턴 포스트 등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사설은 차라리 볼티모어 시장의 사임을 요구해야 했었다”며 “사태의 모든 원인을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로 한정하는 것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글을 쓴 이유를 밝혔다.

듀크대학의 한 고위 관계자까지”그의 글은 공론화의 가치가 없는 내용”이라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학측은 그에 대한 징계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휴 교수는 현재 휴직을 신청한 상태다. 대학측에서는 예정된 휴직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이번 사태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올해 80세인 휴 교수는 듀크대에서만 42년째 교수로 재직중이며 내년에 퇴임할 예정이다.

쟁점

뉴욕타임스의 사설은 “볼티모어 폭동 사태의 원인은 지역 흑인사회의 가난과 고립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가난과 고립은 오랫동안 계속된 차별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볼티모어의 흑인 차별 역사는 특히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볼티모어는 북부지역에 위치한 도시지만 인종차별 문제에 관한 한 오히려 남부 도시와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어두운 역사로 인해 전체 인구의 63%가 흑인인 볼티모어는 전국 대도시 가운데 젊은층이 가난을 벗어나기 가장 어려운 곳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젊은층(26세 기준)의 소득수준 비교에서 볼티모어 거주자의 소득이 전국 평균에 비해 26%나 낮다는 하버드대의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하지만 휴 교수는 “사설의 내용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흑인사회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 지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시안을 대척점에 놓는다. 그는 인터넷 글에서 “아시안은 흑인보다 더 심한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현실에 낙담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더 열심히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듀크대 교수로 일하면서 겪은 경험담도 소개했다. “아시안 학생들은 대부분 미국적인 이름들을 갖고 있다. 이는 미국사회에 동화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흑인 학생들의 이름중에는 생소한 것들이 많다. 미국사회에 동화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아시안 학생들은 백인과 데이트를 하고 결혼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흑인 학생중 백인과 데이트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는 백인과 데이트를 하는 흑인은 흑인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휴 교수의 이런 주장에 대해 아시아계도 발끈하고 나섰다. 아시안에 대한 그의 언급은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폄하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제프 양은 “미국사회에서의 성공 여부를 동화에서 찾는 휴 교수의 전제부터 잘못됐다”며 “소수계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특징마저 지우라는 것이냐”고 비판했다.그는 이어 “백인들이 정의한 기준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했다거나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휴 교수는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종주의자들 외에는 내 의견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태한교수의 분석

장태한 UC리버사이드 소수인종학 교수 겸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소장은 휴 교수의 주장을 ‘신보수주의(Neo Conservatism)’적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60~70년대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해지자 80년 대에 거세진 것이 신보수주의”라며 신보수주의자들은 소수계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를 정당화 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모범 소수민족론’이고 아시안이 그 대상이 됐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휴 교수가 아시안을 흑인과 대비시킨 것도 이런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실제로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언론에 많은 아시안 ‘성공 스토리’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배경은 무시한 채 현상만을 강조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라며 “이들에 의해 ‘모범 소수계’가 된 아시안은 흑인이나 라티노 등 타 소수계에게는 오히려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동필 기자

[LA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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