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 이철수씨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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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73년 살인혐의 종신형
한인사회 구명 ‘무죄’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갱 단원 살해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한인사회의 구명운동 끝에 무죄로 석방됐던 이철수(62.사진)씨가 지난 2일 숨졌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씨는 화상 후유증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중 혈관폐색으로 지난 달 19일 샌프란시스코의 세인트 매리스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이씨의 자서전 작업을 도왔던 UC데이비스의 리처드 김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이철수씨가 2일 밤 숨을 거뒀다”면서 “너무나 억울한 인생을 살았는데, 벌써 세상을 뜨니 가슴이 먹먹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철수 사건’은 이씨가 1973년(당시 21세)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갱 단원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으면서 한인사회에도 알려졌다.

당시 한인 언론인인 이경원씨(당시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기자)가 유죄 판결에 의문을 제기한 기사를 쓰기 시작한 뒤 한인을 비롯한 아태계 커뮤니티가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펼쳤다.

이씨는 결국 1983년 무죄로 석방됐다. 당시 한인사회는 이씨의 재판 비용 20만 달러를 모았고 이후 6번의 재판을 통해 결국 이씨의 무죄가 입증됐다. 미주한인 이민사에서 한인들이 동포의 인권을 위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결성하기는 처음이었다. 또 일본계, 중국계, 필리핀계 등 아시안이 범연대 조직체를 구성한 것도 처음이었다.

이철수씨는 석방 후에도 이경원 원로기자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원 원로기자는 3일 본지와 통화에서 “지난 추수감사절 때 나에게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말했지만 그 친구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운전하기 힘들텐데 그냥 집에서 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지옥같은 감옥에서 열번, 백번도 넘게 죽었던 그가 진짜로 세상을 떠났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죽기 전에 나를 한 번 꼭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안 만난 게 너무나 후회된다”며 울음을터트렸다.

원용석 기자 wo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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