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다 ‘인종화합 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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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21년간 4·29 복싱대회 이끈 정왕기씨 암투병
올해 시합은 무산 위기
지난 21년간 4·29 인종화합 복싱대회를 이끈 정왕기 회장(왼쪽)이 암투병 중인 가운데에서도 올해 대회 개최를 위해 후원자를 찾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정 회장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복장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중앙 포토]

4·29 LA폭동이 발생한 후 한인 커뮤니티에는 인종화합을 내세운 행사들이 이어졌다. ‘4·29 메모리얼 인종화합 복싱대회’도 그중 하나다.

1994년 처음 시작된 이 대회는 지난 21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진행됐던 유일한 대회로 꼽힌다. 매년 LA한인타운에 있는 샤토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열린 인종화합 복싱대회는 전국복싱연맹의 공인을 받아 남가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복서들도 꽤 많이 참석해 왔다.

하지만 올해는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행사를 묵묵히 이끌어왔던 정왕기(61) 재미대한복싱연맹 회장의 갑작스런 암발병 때문이다.

2주 전 간단한 검진을 받기 위해 이스트 LA에 있는 USC-LA카운티 병원을 찾았던 정 회장은 병원 측이 그 자리에서 강제입원시켰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 병원 진단 결과 위암 4기. 폐와 가슴 등에도 전이된 상태라 수술도 불가하다.

특히 위와 식도를 막고 있는 암세포 덩어리 때문에 정상적으로 음식섭취가 힘들어 주사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

수시간마다 진행되는 검사와 통증으로 힘든데도 정작 정 회장은 한 달 여밖에 남지 않은 대회가 무산될지 모른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대회 개최에 필요한 경비는 5000달러. 정 회장은 지금이라도 후원자를 찾고 US복싱협회에 심판 파견과 사각 링도 요청해야 한다며 답답한 마음을 피력했다.

정씨가 복싱대회에 이렇게 애착을 보이는 건 함께 땀을 흘리는 운동만이 인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릴 때 받았던 인종차별과 마음의 상처를 복싱을 배우며 극복한 경험도 바탕이 됐다.

한국에서 복싱선수로 활동했던 정 회장은 30년 전인 85년 미국 버지니아주로 이민왔다가 2년 뒤 LA로 이주했다. LA에서 체육관을 열고 인근에 거주하는 다인종 청소년과 청장년들에게 복싱을 가르치던 그는 LA폭동을 목격한 후 함께 복싱하던 다민족 친구들을 결집해 복싱대회를 열었다. 그때부터 정 회장의 복싱을 통한 재능기부는 시작됐다.

“아이들이 함께 몸을 부딪치면서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다 보면 피부색으로 인한 갈등은 사라지거든요. 무엇보다 링 위에서 싸우지만 링 밖에서 우리 모두는 이웃이자 친구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체육관 문을 닫은 후에도, 또 밤새 건물을 지키는 시큐리티 가드로 일하는 동안에도 매일 오후 2시간동안 라파예트 파크에서 무료로 복싱 강습을 해왔던 정 회장은 “나쁜 맘을 먹었던 청소년들이 복싱을 배우면서 자신감을 찾고 학업을 지속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몸무게가 60파운드 가까이 빠져 수척해졌지만 복싱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던 정 회장은 “이 대회의 취지는 LA폭동을 기억하고 다인종 이웃들을 모두 품자는 것이다. 내가 있든 없든 대회가 계속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원문의: (213)505-2552 홍연아

장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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