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라면 싸이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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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이경민·기획특집부 차장

요즘 싸이보는 게 도통 즐겁지가 않다. 어딘지 부담감이 읽혀서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강남스타일’의 엄청난 성공 뒤라 거기 버금가는 후속곡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히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후속곡 ‘젠틀맨’은 작위적인 냄새를 풍겼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따라하기 쉬운 춤, 온갖 개그 코드를 버무려놓은 뮤직비디오까지, ‘강남스타일’을 통해 터득한 글로벌 히트 공식을 ‘일부러’ 짜깁기해 우겨넣은 티가 적잖이 났다.

최근 발표한 ‘행오버’는 더하다. 한국 시장을 기반으로 한 가요라는 느낌 대신 아예 미국을 비롯한 세계 팝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리듬과 가사, 곡 진행 방식을 택한 게 명백히 보였다. 힙합스타 스눕 독이 피처링을 해준 덕에 영어 가사도 한껏 늘어났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해외 시장을 겨냥해 야망을 키워가는 것, 기존의 성공 요소에 새로운 시도를 더해 예술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싸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 한국 문화의 전파자가 돼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 보여서다.

언젠가부터 싸이에겐 국가 브랜드라는 옷이 덧입혀졌다. ‘강남스타일’ 이후 그는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 홍보광고 ‘위키코리아’의 단독 모델이 되는 등,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자료나 영상에는 빠지지 않는 ‘한국의 얼굴’이 됐다. 그의 노래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얼마나 올라갔는지에 대한 연구도 줄을 이었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이어진 건 물론이다. 어느 순간 싸이는, 대중문화계의 국가대표가 돼 버렸다.

개인에겐 자랑스런 일이지도 모르지만 아티스트로선 독이었다. 싸이는 더이상 옛날처럼 앞뒤 좌우 전후 고려하지 않고 일단 질러버리는 ‘무대뽀 캐릭터’로 활동하는게 불가능해졌다.

국민의 기대감과 국가 이미지 제고의 무게를 짊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만들고 싶은 노래, 하고 싶은 노래보다 ‘널리 한국을 이롭게 할 만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를 괴롭히는 듯하다. 뮤직비디오에서도 한국 곳곳의 풍경을 알리고 동료 연예인을 소개하고, 심지어 한국의 주류 브랜드나 폭탄주, 노래방, 당구장 등의 유흥 문화를 소개해야만 한다는 강박마저 느껴진다.

지난 27일 북미지역에서 개봉한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이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봉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매번 작품을 만들어 내놓는 것 자체가 힘들고 어깨가 무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국가적 사명을 띠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책임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난 내 자신의 창작세계가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을까에 집중할 뿐이지, 문화적 사명과 한류적 책임 따윈 눈곱만큼도 지고 싶지 않다.”

‘설국열차’는 일찌감치 북미시장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그 빼어남을 인정받았다. 그 어떤 굴레에도 메이지 않고, 자신의 창작세계에 집중한 봉준호 감독의 성취다. 싸이도 그래보길 바란다. 그 때 비로소 가장 싸이다운, 또 다른 ‘강남스타일’이 탄생할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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