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데레사의 지팡이 LA도착…지난달 29일 미사 봉헌, 전세계 순례길 행사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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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사용했던 순례 지팡이를 들고 입당하는 모습.

지난달 29일 알함브라시에 위치한 세인트 데레사 미국성당(St. Theresa Catholic Church)에서 특별한 미사가 봉헌되었다.

16세기 스페인 곳곳에 맨발 가르멜 수녀회(봉쇄)와 남자 수도회를 창립한 성녀 데레사의 유물 중 하나인 지팡이가 전세계 순례길에서 이 날 도착하게 된 것이다.

‘진리의 빛을 따라서’라는 주제로 시작된 이 순례는 성녀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로 데레사 성녀의 대축일이었던 지난 10월15일 원래 보관되어 있던 스페인을 출발했다.

미대륙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유럽의 5개 대륙 30개 나라를 순례한 다음 성녀 탄생 500년이 되는 날인 내년(3월28일) 아빌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순례 거리는 모두 11만7000마일로 164일의 여정이다.

첫 순례 도착국은 브라질로 미국은 9번째 방문국이며 한국에도 순례할 것으로 알려졌다.

LA공항에 도착한 순례 지팡이가 성당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쯤이었는데 이미 12시부터 이 성당을 사목하고 있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의 미국인 사제들과 인근의 봉쇄 수녀원의 수녀들 그리고 한국에서 파견된 한인 가르멜 수사 신부들도 성당 앞에서 설레고 감격스런 마음으로 도착을 반기는 모습이었다.

수도복을 입은 미국인 사제가 투명한 플라스틱 길다란 박스에 들어있는 순례 지팡이를 두 손에 받쳐들고 성당에 입당하면서 이 날 미사가 시작되었다. 성녀의 순례 지팡이는 제대 위에 마련된 성녀의 이미지 사진 앞에 놓여졌다.

제대 위에 마련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이미지 사진과 순례 지팡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제대 위에 마련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이미지 사진과 순례 지팡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미사를 집전한 LA대교구의 살라살 주교는 “LA교구에 400 여년 전 광활한 스페인 곳곳에 수녀원과 수도회를 창립할 때 늘 함께 했던 성녀의 유물을 직접 대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기쁘고 영광스럽다”며 “이같은 성인들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며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신자들의 마음자세를 짚어 주었다.

이어 살라살 주교는 “이들은 지상에서 하느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할 때 사용했던 물건들은 우리에게 남겨놓고 오직 그들이 행한 업적만을 하느님 앞에 가져갈 수 있다”며 “하느님 앞에 가져갈 업적이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얼마큼 했는가 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우리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것을 당부했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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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레사 성녀의 세가지 은혜

학자들은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세가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첫째가 초자연적인 신비체험(현시 예수님의 모습)이고 두번째는 체험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했고 마지막 은혜로 이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결과 ‘완덕의 길’ ‘영혼의 성’ 등과 같은 신비신학의 주요한 영성 서적들을 남겨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교회 학자’ 라는 칭호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녀 데레사는 기도의 개념에 대해 “나는 기도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 그 분과 단둘이 친밀하게 자주 우정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라며 자신의 신비체험을 통해 하느님이 원하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피력했다.

그래서 창립할 당시 마차가 진흙탕에 빠져 버리자 “당신은 친구를 이렇게 대하세요”라고 예수님께 화를 낼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성녀에게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이 바로 기도였고 곧 매순간들이었다. “아무 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 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님만으로 만족하도다…”라는 성가의 원본도 성녀가 메모해 놓고 항상 마음으로 읽곤 하던 것이었다.

성녀의 신비체험은 16세기 당시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또하나의 도전이었기 때문에 종교재판을 받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어야 했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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