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관광객 잘못된 진술로 살인혐의 뒤집어 써

0
[LA중앙일보]
‘범인 아니다’ 증언 무시…물증 없이 종신형 선고
수감 후 감옥서 백인 갱을 정당방위 살해로 ‘사형’

이경원 기자 끈질긴 취재·유재권 전 의원 변호로
한인사회 주도 대규모 구명운동 일면서 ‘자유의 몸’

지난 2007년 고 이철수(왼쪽)씨가 이경원 원로기자와 함께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1973년 6월 3일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식당거리에서 대낮에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어 중국계 와칭갱단 소속의 임이택이란 인물이 쓰러졌다.

그런데 백인 관광객의 잘못된 진술로 현장 인근에 있던 이철수씨가 용의자로 체포됐다. 하지만 이씨는 당시 여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용의자로 체포된 이씨는 물증도 제시되지 않은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철수가 범인이 아니다”는 한 목격자의 증언도 무시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무기수로 듀엘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이씨는 1977년 10월 8일 함께 수감중이던 백인 나치주의자 갱단원 모리스 니드햄을 죽이게 된다. 이씨를 죽이기 위해 모리스가 칼을 휘둘렀고 이씨는 살아남기 위해 그를 죽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당방위였음에도 이씨는 또 재판을 받았고 이번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이씨는 샌퀸틴 교도소로 이감돼 21번째 사형수로 집행을 기다리게 됐다.

이씨의 인생이 바뀐 것은 그의 일본인 친구였던 야마다 란코씨가 친구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뛴 덕분이었다.

그는 이철수씨 구명운동을 홀로 펼쳤으나 변호사들이 엄청난 돈을 요구해 결국 직접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려야 된다고 생각해 이철수 스토리를 새크라멘토 유니언지의 한인 기자였던 이경원 기자에게 제보했다. 그는 “꼭 만나고 싶다. 친구를 구해야 한다”며 이철수씨 이야기를 꺼냈다. 이경원 기자는 당시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4년도 지나, 별 감흥은 없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야마다 란코를 카페에서 만났다. 란코가 내민 두꺼운 공책엔 날짜별, 인물별로 증언들이 자세히 적혀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연세대와 브리검영대를 거쳐 UC데이비스 대학원에서 법학공부를 하던 유재건 전 국회의원의 도움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의원은 이씨를 면담한 뒤 1차 사건이 잘못됐음을 확신하고 77년 ‘이철수구명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이때부터 재판 서류 등을 샅샅이 뒤져 이씨가 7가지 위헌적 재판 절차의 희생양이었음을 밝혀냈다.

또 이철수의 차이나타운 살인사건을 본격적으로 탐사추적하던 이경원 기자의 특집기사 ‘차이나타운의 앨리스’가 1978년 1월 29일 새크라멘토 유니언지에 보도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사로 ‘이철수에게 정의를 찾아주자’라는 캠페인이 미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특히 ABC 최고의 간판 시사프로였던 20/20 등 주류언론에서 이철수씨 사건을 비중있게 다뤘고, 끝내 재심이 받아졌다.

결국 1983년 3월 28일 이철수 씨는 억울한 살인누명으로 체포당한지 근 10년 만에 자유의 몸으로 풀려났다. 누구보다 이날을 기다려 온 야마다가 달려가 이철수씨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야마다씨는 지금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원용석 기자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