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불안한 그 자리…“나는<부목사> 비정규직 노예”

0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부교역자 사역 현황’ 조사 발표

사역 보장 안 되고 생계 어려워
담임목사 월급에 절반도 못 미처

목사지만 목회 아닌 다른 일 치중
대형교회는 업무 능력 더 중요해

“담임목사와 부목사는 주종 관계”
사역 기준·노동 환경 보장돼야

내 존재는 도대체 뭘까. 요즘 들어 종이나 머슴, 혹은 노예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주변 동료 부목사들은 자신을 비정규직 또는 계약직 목사라 여긴다. 이제 부목사 생활 7년차. 지금 시무하는 교회에선 2년 반 정도 사역했다. 언제라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월급은 2000달러(한화 204만 원)가 조금 넘는다. 아내와 2명의 자녀를 부양하려면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아내가 따로 일을 해야 한다. 솔직히 남편으로서 가족에게 체면이 안 선다. 간혹 “다른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교회에서는 목사의 경제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하루 평균 10시간 정도 사역한다. 애초부터 기준 따위는 없었다.

사역과 관련해 계약서도 작성한 적이 없다. 환경이 나쁘면 심적으로라도 여유가 있으면 좋겠는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심하다. 제발 보스(담임목사)의 권위주의와 부당한 언행만이라도 없으면 좋겠다.

(지난 8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부교역자 사역 현황’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머리글은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 부목사들의 평균치 응답을 종합해 작성해보았습니다. 미주 한인교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인교계 내 부목사들의 현실을 알아봤습니다.)

부목사에겐 업무 능력이 우선

“목회를 잘하는 부목사는 좋은 목사가 아닙니다”.

남가주 지역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던 김모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좋은 목사의 조건을 물었다. 김씨는 주저 없이 ‘업무 능력’을 꼽았다.

그는 “오늘날 교계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는데 있어 신학은 그다지 필요가 없다. ‘목회학(M.Div)’ 학위는 사실상 일종의 목사 자격증일 뿐”이라며 “부목사에게는 목회를 빙자한 행정, 마케팅, 관리 등의 업무 능력이 더 요구된다. 그걸 잘하는 목사가 더 유능한 인재”라고 전했다.

19일 오후 LA지역 한 카페에서 남가주 교계에서 사역중인 부목회자 3명을 만났다. “부목사 세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은 모두 익명을 요구했다.

LA지역에서 사역중인 정모 목사는 “대부분 신학생이나 목사 초년생들은 소위 ‘대형교회 취업’을 원한다”며 “목사라는 직책이 워낙 불안정한 직업이다. 생계 보장을 위한 안정된 교회를 원하다 보니 목회에 대한 본질적인 소명은 현실과 상충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사 진모 씨는 “부목사는 설교할 기회도 많이 없다. 담임목사를 떠받드는 역할이 때론 목회나 설교보다 더 중요하다”며 “서열 문화가 심한 한인교계에서 목사의 직책은 곧 사례비(돈)로 나뉜다”고 밝혔다.

교회는 노동법의 사각지대

실제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월급 차이는 컸다.

본지는 남가주 지역 한인 대형교회인 B교회(교인 수 5000명)의 ‘2015 예산 목록’을 입수했다.

분석 결과 담임목사에게는 매달 1만763달러의 사례비가 지급됐다. 은퇴연금·목회 연구 및 도서 구입비·자동차 리스·목회 활동비 등 별도 비용까지 합할 경우 실제 급여는 이보다 더 많다. 이 교회 은퇴 목사의 경우 매달 5922달러를 받는다.

반면 부목사에게는 매달 5633달러가 지급됐다. 담임목사 급여의 절반이다. 은퇴 목사 보다도 낮다.

버지니아주 한인 대형교회인 W교회(교인 수 2000명)의 부목사 급여는 매달 4750달러(자동차 운영비·가족수당 포함)다. 이 교회 역시 담임목사 급여는 부목사보다 두 배 이상이다.

대형교회 부목사인 김모(45)씨는 “공식적으로 출퇴근 시간(오전 9시~오후 5시)이 있지만 새벽기도, 저녁에는 교인 심방 및 성경 공부 인도, 주말 교회 행사까지 맡다 보면 근무 시간은 의미가 없다”며 “소명으로 감당하는 게 목회라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는 사실상 노동법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교회 부목사 박모(38)씨는 “웬만한 중소형 교회 목회자보다 ‘돈’은 많이 받지만 담당 구역 교인수 관리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며 “담임목사와 부목사는 주종관계에 가깝다. 담임목사 눈 밖에 나면 타교회 사역지를 구하는 것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참게 된다”고 전했다.

사역을 위해 소비되는 부목사

중소형 교회 부목사의 경우 사정은 다르다.

이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시달린다. 기본적인 생계 유지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LA지역 J교회(교인 수 80여 명) 한 부목사는 사례비로 매달 2100달러를 받는다.

이 부목사는 “교회 사례비로만 살아가는 게 어렵기 때문에 아내가 다른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 등을 하며 돈을 번다”며 “교회에서는 설교나 목양보다는 주로 교회 차량 운전, 청소, 행정 등이 주된 사역”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특히 한인교계 정서상 사역지(교회)를 구할 때 미리 사례비나 업무 조건 등을 언급하는 건 “목사로서 눈치가 보인다”는게 부목사들의 전언이다.

취재 가운데 만난 한 미자립교회 부목회자는 “교회를 구할 때 사역 조건은 대충 구두로 정한다”며 “사례비 액수도 막상 돈을 받아 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천신학대학원 조성돈 교수는 “정해진 계약도, 약속된 것도 없이 그냥 사역을 위해 소비되는 인력이 부교역자”라며 “부교역자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서 사역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LK법률그룹 제이미 김 변호사는 “목회자도 근로자다. 직장(교회)을 구할 때 사례비, 업무 시간 등을 묻고 교회 측과 계약조건을 명확히 하는 건 근로자가 갖는 당연한 권리”라며 “미국의 경우 종교 기관들도 정확한 업무 조건 등이 명시된 계약서와 자체 기준 등을 통해 사역자를 합리적으로 고용하고 합법적인 노동 환경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

담임목사 변해야 부목사 변한다

목회자 간 동역자 인식 필요
‘부목사’ 명칭 성경과 어긋나

부목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주님의교회 김병학 목사는 “부목사 때 좋은 담임목사나 멘토를 만난다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며 “담임목사는 부목사를 아랫사람으로 보지 말고 동등한 위치에서 역할의 차이에 따른 ‘동역자’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역을 위한 관계가 아닌, 인격적인 교제의 관계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 박상진 사무국장은 “이민 교계도 부교역자들의 경제적 어려움, 불안정한 사역, 과도한 업무, 비인격적인 대우 등의 실제 문제가 심각하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목회자 간에 인격적 관계 형성과 존중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적 부분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오늘날 교계에서는 교회에 비해 목사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생계형 목사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목회자가 소명을 잃고 제도권 안에서 비합리적인 일을 묵과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된다.

교인 김정주(43·LA)씨는 “부목사는 비정규직이다. 교단 차원에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목사가 너무 많다 보니 교회 입장에서는 부목사 자리를 두고 사람(목사)만 바꿔 끼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목사들이 생계를 걱정하다 보면 아무래도 바른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고 각종 부조리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부목사’라는 명칭 자체가 본래 성경과 어긋난다는 입장도 있다. 용어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고려신학대학원 이성호 교수는 “담임목사와 부목사 제도는 로마 가톨릭의 사제와 부사제 시스템과 유사하다. 이는 종교개혁가들이 타파하려 했던 것”이라며 “부목사 제도는 한국적 토양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낸 타협의 산물이다. 개신교회의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직분의 동등성으로 이를 성경적 원리에 따라 바로잡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열 기자

==========================
부목사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부목사 실태 조사(2014년 12월~2015년 1월)’는 한국 개신교 내 949명의 부목회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신뢰도는 95%(오차범위 ±3%)다. 주요 설문 결과를 정리해봤다.

▶현재 경제사정은?

어렵다(64.2%)/만족한다(5.2%)

▶경제적 이유로 다른 일 경험은?

하고 있다/한적 있다/할 생각이 있다. (57.9%)

▶배우자의 경제활동?

현재 하고 있다/한 적 있다. (59.2%)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교회 방침은?

배우자의 경제 활동만 허용(56.5%)

▶사역 관련 계약서는?

쓴 적 없다(93.9%)

▶계약서 작성 필요한가?

필요하다(79.3%)

▶사역 향상에 필요한 건? (복수응답)

사례비 인상(67.3%)/전문성 향상 기회 제공(63.9%)/목회역할 구체화(45.6%)

▶어려움이 개선되려면?

담임목사의 부당한 언행 및 권위주의 근절(22.9%)

▶부교역자의 이미지는?

종·머슴·노예(10.8%)/비정규직·계약직(8.1%)/담임목사의 하수인(5.5%)/교회의 소모품(5.2%)

▶평균 근무 시간(1일 기준)? 10.8시간

 

[LA중앙일보]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