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세월호 1년, 달라진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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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는 왜 꼭 내 앞에서만 깜빡일까. 달려가면 도로교통법 위반인데. 설마 걸리겠어. 뛰자.

오늘 아침 내가 이랬다. 아니, 거의 매일 그렇다. 옹색한 변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 대한민국 곳곳 출근길 횡단보도는 100m 달리기 경기장이 된다. 이 경주엔 선도 없다. 많은 이들이 횡단보도 선 밖 차도로 막판 스퍼트를 감행한다. 넘지 말라고 그어놓은 선인데 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뜬금없는 횡단보도 얘기를 꺼낸 건 사흘 뒤가 무서워서다. 1년 전 그날 아이들을 포함해 476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았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설마’가 켜켜이 쌓인 무게로 가라앉은 건 아닐지. 인재(人災)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 그 이후, 한국은 무엇을 배우고 바꿨을까. 노란 리본 달고 여전히 보행 안전조차 지키지 않는 게 우리의 2015년 4월 민낯이다. 1년이 지났지만 세월호도, 한국 사회도 그대로가 아닐까.

이런 감상을 외국인으로부터 듣는 건 사실, 불편했다. 어느 영국인 서울특파원과 지난달 광화문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포스트-세월호 한국에서 달라진 게 뭐냐”고 그가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보기엔 없다”고 단언했다. 안전이 제일이라고 말만 하고 구호만 외칠 뿐 행동엔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보행신호 무시부터 운전 중 휴대전화 확인 등을 근거로 들었다.

어느 일본인 서울특파원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도 떠오른다. “방금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들이 앰뷸런스가 지나가자 질서정연하게 길을 비켜주는 광경 목격. 서울 생활 수년 동안 처음 봤다. (한국도) 하면 할 수 있네.” 차마 ‘좋아요’를 누를 순 없었다.

영국인 특파원과 식사를 마치고 나온 광화문 사거리엔 “진실은 아직도 바닷속에 있습니다”라는 분들과 “유가족 여러분, 진실을 호도하지 마시고 돌아가세요”라는 분들이 대치 중이었다. 세월호의 씁쓸한 유산이다.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선을 지켜가며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작지만 큰 변화들이 생기는 게 아닐지. 국제 뉴스에서 ‘세월(Sewol)’은 인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정작 우리는 세월호를 정치적으로만 소비하고 소모하는 건 아닐까.

서로의 골이 깊어지는 사이 변화의 골든타임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헛되이 시간만 보냄’으로 정의되는 말이 허송세월이라지만 세월호까지 ‘허송’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무섭다.

전수진 기자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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